할머니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강영은

할머니...
평생 단 한 번도 아프신적 없으셨던 할머니께서 
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시고 일년이 다 가도록 
말씀을 못하시게 되어 마음이 참으로 아픕니다. 

할머니...
평생 단 한 번도 할머니랑 대화할 때 웃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 
유쾌하시고, 재밌고, 늘 여유가 넘치시는 
할머니의 장난끼 섞인 목소리가 그립습니다. 

할머니...
세상 단 하나뿐인 할머니의 갈비찜, 동치미, 김장 김치, 만두, 잡채, 모든 나물 반찬 등 
할머니 표 음식들의 맛과 정성, 사랑이 밑거름이 되어 
이제는 제가 그 음식들을 만들며 할머니를 추억합니다. 

할머니...
세상 단 하나뿐인 할머니가 짜주신 들기름을 
아끼고 아껴 먹으며, 한 방울 한 방울 떨어뜨릴 때마다  
그 향 속에 묻어나는 할머니 사랑의 고소한 냄새에 한 껏 취해보았습니다.  

할머니...
세상 단 하나뿐인 할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신 면보로 
아이들과 식재료들 물기를 꾹 짤 때마다 
할머니만의 비법으로 만들어주신 특별한 면보라고 자랑했습니다.

할머니...
세상 단 하나뿐인 할머니가 사 주신 솜이불 속에 
폭 안겨 잠에 들 때마다 
할머니께서 나를, 우리를 꼭 안아주시는 것 같습니다. 

할머니...
새벽 3시에 하루를 새벽예배, 운동, 청소, 가정예배, 식사로 시작하시는 
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하며 
저희도 새벽을 깨우는 삶을 살아갑니다.

할머니...
자식을 위해 운동하신다며 80이 넘어서도
매일 운동 한 번 빼먹지 않고 걷고 또 걸으시던 두 분을 생각하며
남편과 저도 이 추운 겨울 달리고 또 달려봅니다. 

할머니...
딸 아들 딸 딸 딸 
할머니랑 똑같이 다섯 자녀를 낳아 키우는 제게 
늘 수고한다 잘한다 기도한다며 격려해주시는 할머니가 있어 지금의 저희가 있습니다. 

할머니...
다 말라빠진 건포도를 입에 물고 
자신의 모든 것을 다 자식들, 손주들에게 내어주시고, 
앙상하게 말라버린 할머니를 생각합니다. 

할머니...
입 속에서 다시 부풀어 오르고 말랑해지는 건포도를 삼키며
어린 소녀로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오시어
80 평생 주님과 가족들 섬기신 할머니의 삶의 향기가 내 온 몸을 감싸 안습니다. 

할머니...
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기도, 특히 간식, 밥 먹을 때, 잘 때, 매순간 마다 
할머니 기도를 빼먹지 않는 아이들의 기도를 들으시어
한 번 더 할머니를 안아보고, 할머니 목소리를 듣고, 할머니랑 웃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. 

할머니...
할아버지를 여의시고 그 큰 상실감으로 매일을 눈물 흘리셨던 할머니를 생각하고,
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수많은 검사와 반복되는 감염으로 
고통스러워하시는 할머니를 이제는 보내드려야 한다면 잘 보내드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. 

할머니...
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주신 많은 선물 가운데 
"은혜"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신 가장 고마우신 선물은 
바로 할아버지 할머니이십니다. 

할머니...
한국과 미국 
이 땅과 천국 모든 시공간을 초월하여
할아버지 할머니는 제 마음속에 늘 살아계십니다. 



84세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 
큰 손녀 강영은 드림 

 
 
   

  

Comments

  1. 아.... 너무나 감동적이에요... 이렇게 훌륭하신 할머니의 신앙과 인생이 사모님께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정말 선명히 표현되었네요! 사모님, 하늘의 위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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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1. 감사합니다. 사모님! 부모님의 은혜 조부모님의 은혜는 다 표현할 길이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마음을 몇자 적어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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